"오픈런 없는 무료공간"…쪽방촌 주민 600명 몰려간 '온기창고' [현장+]

입력 2023-09-06 20:00   수정 2023-09-07 00:32


6일 이른 오후 찾은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골목. 빈 가방과 수레를 끌고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는 쪽방촌 주민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이 향한 곳은 서울시가 '생활밀착형 약자동행 정책'이라는 목적으로 주민들에게 무료로 생필품을 지원해주고자 마련한 '온기창고'다.

온기창고는 지난 7월 20일 개소식을 갖고 지난달 2일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방문객은 모두 쪽방상담소 회원으로 등록 완료한 쪽방촌 주민이다. 운영 한달여 지난 현재 일주일에 600~700명 이상이 이곳을 찾을 정도로 주민들에게 물품 배급소이자 쉼터가 됐다.

온기창고의 운영시간은 매주 월, 수, 금 주 3회로,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이용을 주 3회로 한정한 데는 후원받은 생필품을 정리하고 채울 시간이 필요해서다. 등록 회원에게는 월 10만 포인트가 충전되는 (적립금) 카드를 발행해주는데, 주민들은 배정받은 적립금 한도 내에서 자율적으로 물품을 선택해 무료로 받아 갈 수 있다.

앞서 쪽방촌 주민들은 쪽방상담소 측에서 물건 배급을 공지하면, 당일에 2시간 이상 줄을 서서 받아야 했다. 협소한 공간과 인력 부족으로 민간기업과 단체, 공공기관으로부터 후원 물품이 들어올 때마다 날짜를 정해 선착순으로 배분했기 때문이다.

'오픈런'은 필수였다. 이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건강 취약자들은 불이익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창고형 매장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줄을 안 서도 원하는 물건을 배급받기 편한 환경이 된 것.

여기에 포인트 제도가 없었기에 부정 수급 등의 문제도 있었다. 전익형 서울역쪽방상담소 실장은 "이전에는 중복으로 배급을 받거나,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에게 대리 배급을 받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며 포인트 제도를 통해 이를 해결했다고 전했다.


전 실장은 "온기창고로 바뀐 초반에만 해도 주민들 사이 '가면 물건이 있을까? 없을 거야'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바뀐 체재에 적응해가면서 그 불안함이 해소됐다"고 귀띔했다.

문을 연 지 한 달을 맞은 이날 방문객들에게 온기창고가 생긴 뒤 생활의 변화를 물었다. 이들은 "먹을 걸 무료로 가져다 먹을 수 있는 공간이라 좋다", "줄서지 않아서 좋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거동이 불편해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던 60대 주민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멀리 안 가도 되고,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서 생필품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쪽방촌 주민 신모 씨(49)는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 무료로 생필품을 지원받을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며 "아직 몇 번 방문 안 했는데, 끼니 해결도 되고,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자주 찾을 것 같다"고 웃음 지었다.

앞선 개소식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간단한 발상의 전환인데 우리는 왜 오랜 세월 동안 생필품을 받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시는 분들의 심정은 헤아리지 못하고, 도와드린다고 생각하고 착각하고 살았을까"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이곳 주민분들이 좀 더 마음 편하게, 자존감을 잃지 않으시고 생활하시는데 진일보가 이뤄졌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늘 신경 쓰면서 챙기도록 하겠다"고 했다.


온기창고가 사회에 알려진 뒤에는 기부에 관심을 보이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4일, 익명의 기부자로부터 냉장고를 가득 채울 정도의 아이스크림이 배달되기도 했다. 아이스크림은 총 880개로,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50만2000원에 달했다. 이 기부자는 "온기창고에 잘 써달라"는 취지로 마음을 전했다.



한 주민은 "주민 중에 당뇨병 환자들이 많은데 과자 같은 건 먹지도 못한다"며 "식이요법을 하는 이들도 먹을 수 있는 게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바람도 들려줬다.

전 실장은 "김치, 라면, 햇반, 햄 등 주민들이 간단하게나마 양질의 영양을 공급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며 "기업과 단체 측에서도 후원해주실 때 이왕이면 주민분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들 공급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올바른 물품 배분 문화'를 위한 주민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전 실장은 "여기에 오는 후원 물품들이 '내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곳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목적으로 하는 거지, 삶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라며 "필요한 물건을 마트에서 산다는 개념보다는, 공공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와 쪽방상담소 측은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도 2번째 온기창고를 마련할 계획이다. 전 실장은 "온기창고가 쪽방촌 주민분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생겨날 비슷한 사업들의 롤모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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